[한국일보]



“코로나 이전의 세계와 이후의 세계는 다를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우리나라의 노동시장에 대해 전문가들은 ‘생태계 자체가 바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미 국제통화기금(IMF)이 1998년 외환위기 이후 22년 만에 처음으로 우리 경제가 역성장할 것을 전망했다. 지난달 취업자 수는 전년대비 19만5,000명 줄어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5월 이후 가장 크게 감소했다. 이처럼 고용충격이 걷잡을 수 없이 심화되자 고용노동부는 20일부터 이재갑 장관 직속으로 ‘코로나19대응 고용안전 긴급지원단’을 설치해 6개월간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고용ㆍ노동분야 전문가들은 일자리를 지키고 고용불안 사각지대를 최소화하기 위해 정부의 역할이 ‘신속대응’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신종 코로나 이후 일자리 회복이 그 어느 위기 때 보다 더딜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정부의 장기 노동공약 역시 과감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지금의 상황은 문재인 정부 출범 때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만큼,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바꿀 수 있다는 태세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미이다.


전문가들은 특히 △’최저임금 1만원’ △‘비정규직 사용사유제한’ 공약의 과감한 전환을, △세대별 일자리 정책, △ ‘주 52시간 근로’ 정책의 수정을 요구했다. 이러한 환골탈태의 변화를 가능케 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고용ㆍ노동의 엉킨 실타래를 풀어낼 주체인 노ㆍ사ㆍ정이 정상적인 대화 테이블로 돌아와 구체적인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주문도 더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대표되는 소득주도성장은 전문가들이 일제히 ‘빨간불’을 꺼내든 정책방향이다. 신종 코로나로 중소기업은 물론 대기업까지 휴업ㆍ휴직이 확산되고 구조조정까지 예상되는 상황에서 더 이상의 최저임금 인상은 무리이며,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할 거라는 뜻이다. 이미 최저임금은 2018년 인상률 16.4%, 2019년 10.9% 등 2년 연속 두 자릿수를 기록하며 급격히 올라 소상공인과 영세 자영업자의 고용 부담으로 작용했고, 이에 2020년 결정 당시 제동(인상률 2.9%)이 걸렸다.

최저임금 인상과정에 임금체계 개편 논의가 없었던 것도 방향 전환이 필요한 이유다. 최영기 전 한국노동연구원장은 “최저임금 정책의 목표는 저임금 노동계층의 처우개선을 통해 양극화를 완화하는 것이었지만, 고임금계층의 연대임금이나 직무급제 개편논의 등 다각적 노력이 부재해 효과를 보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위기는 묵은 숙제를 꺼낼 기회이기도 하다. 이장원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고용불안이 보편화되면 노사정은 고통분담을 모색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도 상징적 수준이라도 임금문제에 대한 논의와 양보가 시작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정규직의 사용사유를 제한하는 정책에도 ‘일시정지’가 요구된다. 정부는 기간제근로자보호법상 비정규직의 기간제한(최대 2년)을 사용사유 제한으로 개정할 것을 공약했다. 하지만 사실상 민간기업에 정규직 고용을 강제하는 규제가 될 수 있다는 이견이 많아 지난 3년간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전문가들도 비정규직의 ‘남용’을 막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데는 공감하지만, 경제악화로 기업이 고용 자체를 감당하기가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노동유연성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대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인하대 명예교수)은 “사용사유제한은 결국 경기변동이나 경영악화의 방파제로 비정규직을 사용하는 것으로 귀결돼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고착화할 것”이라며 “적극적 노동시장정책과 사회안전망 확충으로 차별없는 보호와 지원을 모색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40대 고용절벽’ ‘청년실업’등 세대 특성을 겨냥한 정책은 보다 종합적 일자리대책으로 전환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향후 경제구조가 디지털ㆍ비대면 산업 중심으로 바뀌는 게 불가피한 만큼 세대 불문하고 새로운 시장에 적응하는 게 과제가 됐기 때문이다. 그간 다소 선언적 공약에 지나지 않았던 ‘신산업ㆍ신기술 인력양성’이 일자리 대책의 핵심이 될 필요가 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존에 40대 일자리 주 공급처였던 제조업은 위기 이후 더 이상 대안이 될 수 없다”며 “세대와 상관없이 혁신산업 일자리를 창출하고 여기에 적응하도록 훈련하는 것이 중점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주 52시간 근로’로 상징되는 일ㆍ생활 균형정책도 근로자의 실질적 건강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구로 콜센터 집단감염을 반면교사로 삼아 ‘아프면 쉴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고, 신종 코로나로 시작된 유연ㆍ재택근무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존 근로시간 단축 정책은 근로시간 자체를 줄이는 양적 규제에만 집중됐다”며 “이제는 각 산업별 개인별 특수성에 따른 휴식권 보장을 입체적으로 모색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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