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신문]


(사진=고려대 커뮤니케이션팀)


“코로나19 이전 세상은 이제 다시 오지 않는다.” 질병관리본부의 말이다. 이는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맞닥뜨린 상황으로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세상이 갈릴 거란 의미다. 코로나가 큰 영향을 미친 부분은 경제와 노동시장이다. 특히 노동 시장은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고용 중단, 대량 실업 등 큰 고통을 겪고 있다.

이에 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장(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은 “코로나19 전후에 대한 논의가 많지만 노동은 이미 4차 산업혁명 진행으로 큰 변화를 겪고 있었고 코로나가 이를 가속화시켰다”라고 진단했다. 그는 “코로나19 사태로 일어난 급격한 변화에 동요하기보다 ‘뉴노멀 시대’에 길게 대응하는 전문성을 갖출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고려대 노동대학원은 국내 유일의 노동전문대학원으로 노사관계전문가 양성소다. 박 원장은 최근 14대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으로 취임, 후학을 양성하고 현장과 학계를 두루 살피며 노동의 미래를 연구하고 있다. 본지는 박 원장을 만나 노동전문대학원의 교육 철학과 현 노동시장 속에서 노동대학원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박 원장에게 대학원장을 맡은 이유를 묻자 “때가 되어서”라고 웃으며 답했다. 그는 2009년부터 주임교수를 맡아 10년 이상 활동했고 다섯 명의 전임 원장들을 거치며 노동대학원과 함께 성장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가 노동대학원장을 맡게 된 것은 어떻게 보면 노동대학원의 다음 10년을 내다보는 시기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보통 ‘노동법’은 법무대학원이나 법학 관련 학과에 한 과목 정도로 여겨진다. 하지만 고려대 법무대학원 안에도 노동법학과는 없다. 박 원장은 ‘노동’이야말로 ‘법’이라는 한 학문적 영역에 국한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노동문제는 법보다는 경제학과 사회학 기반이고, 노동의 성장은 민주주의 성장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말했다. 이와 같은 학문적 성격으로 고려대 노동대학원은 어느 특정 학부를 모태로 두지 않고, 1965년도에 설립된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부터 출발해 1995년 3월 첫 학생을 받았다.




박 원장은 “민주주의가 성숙하면 노동운동은 유연해지고 다양성이 발휘된다. 특히 유신시대와 군부시대를 거친 우리나라의 노동운동은 반정부·반체제적 흐름에 익숙해져 있다”라고 분석했다. 더불어 “노동과 민주주의는 ‘기본권’을 지키는 문제와 밀접해, 민주화가 덜 성숙된 상태에서 노동운동은 강도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민주주의가 성숙한 시기에 노동운동의 방향을 고민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라고 덧붙였다.

노동문제연구소는 1965년 당시 중앙정보부의 감시 대상일 정도로 탄압의 대상이었다. 그럼에도 노동운동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멈추지 않았다. 이것이 노동대학원의 효시가 됐다. 교육대학원의 수요는 1987년 민주화 투쟁과 노동자 대투쟁 이후에 물꼬가 트였다. 박 원장은 “그 후로 노동조합은 하나의 트렌드가 됐다”며 “회사든, 노동자든 노동 전문성이 없으면 갈등과 투쟁의 쳇바퀴에 갇히게 되고, 상생 관계를 지향해야만 건강하게 회사를 유지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고 주장했다.

노사협력의 힘은 기업 경쟁력과 무관하지 않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노동문제를 전문적으로 연구, 해결하고자 하는 학습 수요가 늘었다. 노동문제연구소가 특수대학원 형태로 야간 과정으로 태어난 이유다. 박 원장에게 학생 구성원은 어떤지 물었다. 박 원장은 “대학원 초기에는 기업 인사 담당, 노무 담당자들이 문을 많이 두드렸지만 시간이 갈수록 입소문과 현장 협상 성과가 알려져 노조위원장, 노조 활동가들도 많이 지원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노조 쪽에서도 사측을 대할 때 ‘투쟁일변도’에서 벗어서 논리와 이론으로 대응하기 위해 많이들 참여하는 추세다.

박 원장은 노동대학원이 ‘아카데미즘과 노동사회의 가교’이자 ‘노사의 가교’가 되는 평화의 공간이 되길 바랐다. 그는 “노동법이나 노동대학원이 ‘사측을 대변하는 교육’을 한다고 생각하는 데 오해”라며 “교육기관은 노사가 함께하는 ‘평화의 공간’을 만들어 적어도 어느 한 곳에서만이라도 상대를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박 원장은 수업할 때 ‘이곳에서만큼은 계급장을 떼고 자기 생각을 말하라’고 강조하는 교육자다. 상황에 따라 보직은 언제든 바뀌고, 창업하면 사용자가 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제 기업의 일은 기업에 국한되지 않고 여론의 주목과 판단을 받기에 정확한 명분과 세련된 논리가 필수다.

초창기에는 기업과 노조에서 학생들이 많이 왔다면 지금은 그 구성원이 더 다양해졌다. 변호사, 노무사, 판·검사들도 노동대학원의 문을 많이 두드린다. 박 원장은 “현장과 결합해서 자신의 전문성을 강화하려는 교육이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일각에서 나오는 ‘엘리트화됐다’는 비판에는 “여전히 다양성에 중심을 두고 학생들을 선발하고 있다. 법 관련 엘리트만 뽑는다면 대학원의 경쟁력이 오히려 떨어진다”며 “인사전문가 중에 노무사 자격증을 가지신 분이 많아진 것이지 조합 활동가들도 여전히 많다”라고 설명했다.

(사진=고려대 커뮤니케이션팀)


고려대 노동대학원은 다섯 개 학과에서 60명 정원(1년 기준)으로 시작했다. 학교 정원 규제로 57명까지 줄어들기도 했지만, 올해 3월 입학생부터는 12명을 타과에서 추가 위탁받아 69명으로 늘었다. 경쟁률도 높아져 4:1까지 치솟기도 했다. 현재 노동대학원은 석사과정 외에도 비학위 과정으로 최고위과정, 노사관계전문가 과정, 근로복지정책 과정, 노사협력 전문가 과정으로 교육 범위가 넓게 포진해 있다.

박 원장은 노동대학원이 가진 숙제도 언급했다. 코로나19는 물론 4차 산업혁명까지 노동의 형태와 규범을 뒤흔드는 환경 속에서 새롭게 합의하고 규정해야 할 규범들이 많기 때문이다. 박 원장은 “사회는 점점 개인화, 고립화, 분자화되고 있으며 업무수행방식의 변화도 많다”며 “이럴 때일수록 적극적으로 사회안전망을 확보하고 시대에 맞는 노동규범을 세워야 하며, 노사가 집단지성을 발휘해서 합의에 이르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노동대학원의 구성원들부터 새로운 기준을 토론하고 연구해서 좋은 사례를 전파할 수 있도록 ‘판’을 펼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출처 : 한국대학신문(http://news.un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