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법률 4월호]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국내 유일의 노동전문 대학원인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에 취임한다. 현 코로나19 시국 아래서라면 잠시 망중한을 보낼 법 하지만, 박지순 교수는 현재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장도 맡고 있어 여전히 책임감에서 자유롭기 어려운 상황이다. <노동법률>이 지난 3월, 박지순 교수를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만나 추후 노동대학원의 운용 방향, 더 나아가 우리 노사관계가 가야 할 방향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Q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에 취임했다.

고려대 노동대학원이 유일한 노동전문 대학원인 만큼 책임감이 상당히 커진 상황이다. 노동대학원이 1995년부터 시작됐으니 25년이 지났다. 처음에는 5개 학과로 시작했지만 그 이후 외형적으로도 상당히 성장했다. 산업현장의 다양한 수요에 맞춰 전문가를 공급하는 교육서비스를 제공하다 보니 규모도 커졌고 배출한 졸업생도 많아졌다. 노동대학원 출신들이 산업현장이라든가 행정, 학계 등 여러 분야에 걸쳐 광범위하게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 만든 노사협력전문가 과정 등 비학위 과정도 활성화돼 있다. 그러다 보니 현장과 노동대학원 간 상호 관계와 영향력도 확대된 상황이다.
그만큼 노동대학원에 거는 기대도 크고, 노동문제를 미래 관심분야로 삼고 있는 많은 지원자들이 노크하고 있다. 한편 경쟁체제가 갖춰지지 않다 보니 자칫 정체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여러 기대나 희망에 부응할 수 있도록 노동대학원이 계속 혁신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점이 부담이라면 부담이고 책임이라면 책임이다. 여기에 노동대학원이라면 올바른 미래 노동질서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역할도 담당해야 한다는 부담이 추가된다.

Q 노동학 박사 과정도 신설됐다. 운영에 변화를 예정하고 있는 사항은.

융복합이 시대적 대세고, 교육부도 융합 전공을 설계하도록 대학에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라 다양한 분야에서 융복합 시도가 있다. 이를 가장 잘 실현할 수 있는 분야가 바로 노동이다. 법률적 측면은 물론 노동시장, 노동경제학적 분석도 중요하고 기업 인사노무 관리 분야도 포함하고 있어서 현장에 실질적으로 적용되는 제반 이슈를 포괄하고 있다.
노동현장에서 이슈가 발생하면 기업 인사나 노무실무, 시장상황, 법률적 문제 분석이 함께 작동돼야 종합적인 솔루션이 만들어진다. 기업현장 측면에서 보면 이를 나눠서 공부하는 게 더 비현실적이다. 

노동문제에 대한 포괄적 해결 능력을 가진 전문가를 양성한다는 방향에서 노동학 박사과정이 신설됐다. 그동안 석사과정을 마친 졸업생들, 학생회 등을 통해 여론을 수렴해보니 노동학 박사과정에 대한 수요가 높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또 특수대학원이라는 한계로 박사과정이 없다 보니 공부에 대한 갈증이 있는 원우들이 석사과정이 끝나면 뿔뿔이 흩어진다. 기본적으로 한번 공부를 시작한 곳에서 지속적으로 연계해서 박사까지 마치고 싶어 하는 수요도 꽤 있었다. 

Q 전문대학원 과정으로 가기 위한 걸음인가.

특수대학원의 전문대학원화는 전임 원장들도 고민하고 시도했던 과제다. 노동대학원은 특정 단과대학의 기초 없이 여러 개 전공이 컨소시엄 방식으로 협업해서 만든 형태다 보니 전임교원이 거의 없고 외부 수혈을 해야 한다.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전문대학원이라는 방향을 잡았다. 

전문대학원처럼 운용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해결해야 한다. 하나는 연속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학업코스, 즉 박사과정을 둬야 한다. 또 노동 분야 전문성을 가진 연구자들이 전임교원으로서 노동대학원에서 역할을 해 줄 수 있어야 한다.
다만 전문대학원 체제로 가려면 풀타임 학생의 입학이 중요하다. 또 대학원에서 취득한 학위가 본인 커리어에서 중요한 직업자격으로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아직 노동학이라는 분야는 전문직업자격 분야로 인정받기가 쉽지 않아 풀타임 학생 확보가 용이하지 않다. 또 현재 노동대학원은 학업과 직장을 병행하려는 학생이 주류이기 때문에, 전문대학원으로 전환되면 그런 수요를 놓칠 수 있어서, 전체적으로 지원자 자체도 기대만큼 많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즉, 전문대학원으로 정착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릴 수 있다.

Q 반면 학계에서는 전문 노동법 학자들이 설 자리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

걱정이 크다. 학문발전을 위해서는 전문적으로 노동법을 연구하는 연구자를 양성해야 한다. 그러자면 대학뿐만 아니라 노동연구원 등 국책연구기관처럼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기관이 필요하지만 선진국에 비해 노동법연구자를 위한 인프라가 취약한 편이다. 그러다 보니 학문적 역량을 갖춘 신진학자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곳이 제한돼, 노동 분야의 학문적 발전에도 큰 장애가 될 것이라는 고민이 있다. 안타깝게도 노동법은 다른 법 분야보다 실용성 높고 학생들의 수요가 많은 분야의 하나임에도, 대학에서 점점 노동법전공교수의 임용이 감소된다는 점은 이해하기 어렵다. 


Q 현재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장도 겸하고 있다.

고용노사관계학회는 노동경제, 노동법, 노사관계, 인사관리 등 다양한 분야에서 그야말로 노동전문가들이 모이는 연합학회적 성격이다. 하나의 사안을 보더라도 여러 측면을 바라보고자 함께 모여 토론하는 자리다. 서로 다른 분야의 전공자들이 공동으로 정책세미나와 행사를 열어 절충점을 찾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왔다. 그런 점에서 앞서 언급했던 융복합적 성격을 가지며, 독창성과 독립성도 갖추고 있다. 1년에 네 번 정도 학회를 여는데, 이미 동계-춘계 학술대회가 코로나19 때문에 취소되거나 무기한 연기돼 학회장으로서 매우 안타깝다. 조만간 사태가 마무리되면 코로나19가 야기한 새로운 문제를 포함해 지연된 학술대회들을 압축적으로 진행해야 할 것 같다.

Q 코로나19 때문에 추후 노사관계 상황이 불확실해 졌다.

코로나19 사태 전후로 나눠봐야 한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도 두 가지 큰 상황변화가 있었다. 먼저 민주노총의 제1노총 등극은 우리 노사관계 역사상 상당히 중요한 사건이다. 이는 현 정부 노동정책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 법원 판결, 노동부의 적극적인 설립 신고증 교부 등이 노조 설립 붐을 만들었고, 그 과실을 민주노총이 상당 부분 가져간 결과다.
이렇게 되면 한국노총은 현장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위기를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고, 선명성 경쟁이 불가피해 정부나 경제계에 강경 노선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 타협보다 투쟁을 선택하고 시장이 수용하기 어려운 요구조건을 내걸어 조직을 결속시키는 방식으로 전개될 수 있다.
두 번째는 경기 불황이다. 코로나와 상관없이 2020년은 경기불황이 지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주력산업의 경쟁력이 지속적으로 저하되고 있다는 조짐이 명확하다. 이런 탓에 상당수 기업에서는 이미 구조조정 문제가 현안이 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선명성 경쟁이 불가피한 양대 노총으로서는 총력을 다해 구조조정 반대를 내걸 수밖에 없기에 노사관계, 노정관계가 어렵게 전개될 것이라는 예상이 적지 않았다. 

Q 코로나19 사태 이후를 전망한다면.

코로나가 몇 가지 현상을 불러왔다. 이전 같으면 벌써부터 각 기업들에서 노사교섭이 시작돼 임금인상률 등 분배 문제를 두고 노동조합과의 갈등이 고조됐을 테지만, 지금은 적지 않은 주요 기업들이 셧다운(Shutdown), 록다운(Lockdown)하거나 생산과 서비스를 감축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연쇄적으로 중소, 하청기업들의 휴업사태가 줄을 잇고 있다. 기업과 노동자 모두 무너질 수 있는 위기 사태다. 더 큰 문제는 언제 이런 상황이 종식될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런 국면에서 투쟁적 노조 활동이 지지를 받을 수 있겠나. 코로나 사태가 오히려 위기 국면에서 노사정 대타협이나 연대를 촉진하는 상황을 만들 수 있다. 강성 대립 기조로 흘러갈 수 있었던 상황에서 미증유의 위기가 발생하면서 오히려 노사가 한숨 돌리고 사회적 대화를 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만들어졌다. 

부정적 측면도 있다. 앞서 말했듯 저성장 국면에 돌입해 장기적인 불황이 예견되고, 산업기반도 약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코로나19 사태가 그런 흐름을 확산시켰다. 예전 IMF 외환위기, 리먼 사태 때는 회복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한 진단이 더 많다. 총선 이후 5, 6월이면 주력산업에 미치는 타격이 현실화할 수 있다. 위기극복을 전제로 일단 봉합돼 있는 현재의 노사, 노정 갈등관계가 다시 외부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그간 어려운 상황에서도 우리가 경제성장률만큼은 가져왔다. 10년 전 리먼 사태 때도 그 위기를 비교적 짧은 시간에 극복했다. 그 당시에는 우리가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10년 동안 그 잠재력이 상당부분 약화됐다. 정부나 기업의 잘못이라는 미시적 평가를 하는 게 아니다. 대내외적 경제환경과 여건들이 부정적 지표를 보이고 경기불황도 현실화되는 상황에 코로나 사태라는 엄청난 혼란까지 겪게 됐기 때문이다. 

결국 노사관계는 분배 과정이다. 기업이 이익을 만들어내야 노조도 교섭을 통해 노동자를 위한 적절한 분배가 가능하다. 그러나 지금의 위기상황에서는 노사 간 정상적 교섭이 이뤄질 수 없다. 반대로 임금인상률 자제나 상여금 반납 등 고통 분담 조치까지는 노사 모두 공감하고 따라온다. 그런데 만약 기업의 도산이나 구조조정이 현실화한다면 어떤 노조 지도부가 "대량해고가 불가피한 것을 잘 알고 동의한다"고 말할 수 있겠나. 대립선이 그어질 수밖에 없다. 전반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Q 부정적 상황을 완화할 만한 요소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서로 협력했던 경험을 어떻게 계속 살려나갈지를 고민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재택근무를 두고 새로운 노동감시체제라며 반대하는 노동계 입장이 있었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다 보니 장점도 보게 됐다. 근로자 입장에서도 막연하게 갖고 있던 불안감이 줄어들었다. 막상 해보니까 큰 문제가 아니고 부작용도 충분히 막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일-가정양립에도 기여하면서 업무수행에도 큰 문제가 없구나, 그간 생산적이지 못한 불필요한 지시를 받아 왔구나' 하는 점이 직원들 입장에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실제 경험하고 있는 혁신이 지속되지 않으면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인식까지도 불러 왔다. 이런 경험은 예상치 못하게 만들어진 것이지만, 잘 살려 나가면 혁신이 된다. 그게 결국 일하는 방식의 혁신이다.

유연근로제나 탄력근로도 마찬가지다. 이런 경험과 제도가 현장에 잘 스며들어야 근로자 개인의 생산성과 기업 생산성 향상이 맞물리며 선순환이 가능하다. 코로나19 사태로 특수를 맞고 있는 일부 산업이나, 업종들은 가능한 가동률을 최대치로 끌어 올려야 한다. 당연히 탄력근로제가 필요하다. 그런데 코로나19 사태가 얼마나 갈지는 아무도 예상을 못하기 때문에 최대 생산가동기간이 얼마나 될지 장담할 수 없다. 서구에서처럼 탄력근로제의 단위기간을 장기적으로 설계하면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렇다면 이번 경험으로 습득한 내용을 빠르게 정책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노조도 이념이나 명분이 아니라 실리 중심으로 가야 한다. 이런 위기가 앞으로 또 오지 않는다는 확신이 없다. 금지나 규제보다는 탄력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제도를 많이 만들어야 하지 않겠나. 위기 봉합 측면도 있긴 하지만,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은 위기 상황에서 경험한 좋은 성과를 정책으로 빨리 전환시키고, 효율을 높일 수 있는 수단으로 만들어 노사갈등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Q 특별연장근로 신청을 두고 노사 대립이 강화된 가운데, 현대차도 연장 신청을 검토 중이다.

현대차 유럽공장, 미국공장, 브라질공장 생산시설이 다 문 닫았다. 그나마 가동률이 높은 곳은 한국 뿐이다. 여기서 더 많이 생산해서 팔아줘야 시장이 유지된다. 그래야 현대차 근로자도 소득을 유지하고 일자리 불안감을 없앨 수 있다. 뭐가 서로에게 실리인지 봐야 한다. 선택지는 명확하다.

그런데 여기서 묻고 싶은 게 있다. 노동계는 왜 특별연장근로 제도에 대해 반대하는 걸까. 그게 어떤 불이익이 발생하는 건지 이유를 명확하게 듣고 싶다. 근로자의 건강 침해 등 합당한 이유가 있다면 빨리 보완해서 그런 우려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하면 되지 않나.

현장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노동정책이나 규제 단위를 산별이나 전국단위로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 현장에 직접 묻고 현장에서 결정할 수 있도록 사업단위의 결정권이 많이 확보돼야 한다. 


Q 산별 교섭에 부정적인 견해로 보인다.

서구 흐름을 보면 100년 이상 된 산별교섭 전통에서 벗어나려는 모습이다.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도 그렇고, 독일도 아직은 산별중심이지만 개방 조항을 둬 사업장 단위서 결정하도록 위임하는 교섭 기법을 많이 만들어내고 있다. 결국 대부분 국가가 교섭을 사업장 단위로 전환하고 있는데 우리만 거꾸로 거슬러 가는 게 답일까.

삼성은 삼성대로, 엘지는 엘지대로 각자 갖고 있는 노사 문화들 무시하고 산업별로 근로조건을 단일화 시킬 수 있을까. 그게 과연 기업이나 근로자에게 도움이 될까 독이 될까. 그렇게 생각해보면 맹목적인 산별 교섭화는 시대착오적인 결과가 될 수 있다.

산별교섭 자체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은행 등 금융기관처럼 업종의 성격상 산별교섭이 필요한 분야도 있다. 또한 산별교섭이 작동해야 할 분야도 있다. 예를 들어 정부가 하기 어려운 틈새 부분, 예를 들면 중소기업이나 하청기업 저소득 근로자를 위한 복지기금 마련 같은 것은 산별 차원에서 만들어낼 수 있다. 산별교섭에서 할 수 있는 콘텐츠, 사업장 교섭으로는 한계가 있는 제도 마련 등은 산별교섭을 고려해야 한다. 기업별 교섭과 산별교섭을 어떻게 조화할지 고민이 필요하다. 산별교섭을 관념적으로만 생각하는 건 아닌지 돌아봤으면 한다.


Q 코로나 이후 4차 산업혁명이 가속화되리라는 전망도 나온다.

산업구조 변화는 필연적이다. 더군다나 코로나 때문에 안전과 생명,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생활방식에도 변화가 올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다. 사람들의 소비 성향이나 방식이 점점 온라인-디지털 등 비대면 방식으로 전환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거리를 두는 생활, 집단적으로 모이는 문화에 대한 두려움, 안전성을 추구하는 문화는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돼도 자리 잡을 것이다. 그렇다면 소비방식이나 소비문화가 바뀔 것이고 이는 유통구조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산업구조 변화를 추동하는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이 이미 상당 수준에 도달해 있기 때문에, 4차 산업혁명 속도도 훨씬 더 빨라질 수밖에 없다.
이런 게 가시화될 때 현재 노동법 구조나 내용이 4차 산업혁명시대의 일하는 방식이나 내용에 부합하겠나. 새 변화에 걸 맞는 새 노동규칙 만들어낼 필요가 있지 않을까.